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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조가 과연 우리 민요 맞나요?
작성자 : 교장.황재순

등록일자 : 2018-01-29 20:32
조회 : 487
파    일 :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 정말로 상당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 진달래꽃 - 7.5- 민요조 전통시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지요.

1924년에 지어져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명시 중의 명시처럼 되어 있는 "진달래꽃"...

 

아직도 많은 국어 참고서나 자습서에 변함없이 기록되어 있는

"7.5= 민요조"라는 이 공식은 언제부터 쓰여진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민요 가락이라면 신라,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조선 시대 정도는 7.5조로 된 전통시가가 몇 개 있어 주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전통 시가에는 7.5조로 된 노래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어찌하여 "7.5= 민요조"라는 말이 생겨 났냐구요?

글쎄요...

정말 모를 일이네요....

 

7.5조가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선을 보인 것은

1908년 최남선이 단행본으로 낸 장편 창가집 "경부철도가"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우리 나라 7.5조 역사는 이제 겨우 100년이 갓 넘었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까닭으로 이 7.5조는 나오자마자 바로 민요조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빨리빨리 결론만 말하라구요?

답답해 죽겠다구요?

 

사실, 저도 빨리 말하고 싶지만

너무 빨리 말해 버리면 심장마비 걸릴 분 있을까 봐 걱정이 되어 그럽니다.

요즈음 하도 놀랄 일이 많아서 무슨 소릴 들어도 신경 안 쓴다구요?

, 그렇다면 말씀 드리지요. 저도 좀 안심이 되네요...

 

7.5조가 민요조가 맞기는 맞는데

문제는 그게 우리 나라 민요조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 민요조라는 점이지요.

 

일본의 전통 가락인 "와카[和歌]"의 율조가 "5-7-5-7-7"이고,

이보다 조금 단순한 형태인 "하이쿠[俳句]""5-7-5"이니

일본 유학 갔다 온 최남선이 이것을 더 단순화하여 "7-5"라는 새 율조를 만든 것이지요.

 

.. 역시.. 별로 놀라지도 않는군요.

그러면 이게 그 동안 어떻게 우리 나라 민요조로 행세하게 되었냐구요?

 

그거야 뭐... 2년 뒤 1910년부터 우리나라는 완전히 일본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일본 민요는 그냥 "민요"라고 불렀고, 우리 민요는 "조선 민요"라고 부르는 시대가 됐지요.

 

그래서 "일본 민요"란 의미로 "민요"란 말이 쓰여진 책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나중에 해방이 되어서는 그 "민요"라는 말을 그냥 "우리 민요"라는 말로 잘못 알고

깊은 생각 없이 옛날 습관대로 그냥 그대로 써 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일제 강점기 때 문인들이 "일본 민요"라는 의미로 "민요"라고 표현했던 것을

해방 후 우리 박사님들이 일일이 고치기 귀찮아서 "우리 민요"라는 의미로 그냥 써 버렸다는..

, 대충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겠네요.

 

어째, 좀 찝찔하기는 하지만...

내친 김에 좀더 상세한 내막을 알아 보기로 합시다.

 

역관 계급의 돈 많은 중인 출신이었던 최남선은 조상 대대로 이 빌어먹을 신분 때문에

아무리 바보 같고 무능한 사람이라도 양반이라면 그저 그 앞에서 굽신거려야 했는데

일본이 들어 와서는 하루 아침에 "양반"이라는 제도를 싸악 없애 버렸으니

 

일본이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었지요...

양반들보다 훨씬 머리 수가 더 많은 소위 "쌍놈"들은 일본 땜에 살 판 났지요.

 

거기에다가 "호적법"인지 뭔지를 만들어서 그동안 성씨도 없이 이름만 갖고 살던 수많은 쌍놈들에게 아무 성씨나 갖고 와서 면사무소에 신고만 하면 모두 인정해 준다고 하니 성씨 없이 살던 54%의 백성들이 일제히 양반의 후손 성씨로 신고하니 이 때부터 우리는 "쌍놈은 없고 양반만 있는 나라"가 되어 버렸지요...

 

40년 뒤 일본식 창씨개명 소동이 지나가고 또 10년 뒤 인민군이 한번 지나가니 우리 집 과거사를 정확히 알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그래서 현재 우리 나라는 전 국민이

무슨무슨 임금의 몇 대 손 아니면 무슨무슨 대감의 몇 대 손으로 자처하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종의 종족이 되어 버렸답니다. ㅎㅎㅎ...

 

어쨌든 모처럼 사람 대우를 받게 된 최남선은 이 새로운 세상에서 자기 이름 석 자 알릴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했지요. 까짓거 정치 같은 거야 민씨네가 하든 일본 놈이 하든 무슨 상관이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빨리빨리 신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처럼 잘 살 수만 있다면..

그 위에 무엇이 부러우랴 하는 것이 최남선의 인생관이자 국가관이었지요...

 

그래서 일본 유학 갔다 오자 마자 즉시 "신문관"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서는

홍명희, 이광수 등과 손잡고 1908년도에 "소년"이라는 잡지도 만들어 내고

또 같은 해에 서울-부산 간 철도 개통을 기념하여 "경부철도가"라는 창가책도 만들고..

그 와중에 일본 율조 7-5조란 것이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라는군요.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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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황재순. 문학박사

작성자 : 조춘재(49회)
    등록일자 : [01/30 08:01]
황박사님
좀 부끄러운 과거사이긴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면은
받아 들일수밖에 없는 문제이군요

잘 공부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 오미례(61회)
    등록일자 : [01/30 16:50]
흐음~~~~~~~

작금의 세태나 조선 왕조 500년이나
아니
성경을 읽다보년 다윗 시대나 솔로몬 시대나

다아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의리고 국익이고는 헌식짝 같은 존재

다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이익을 보는 계층과 반대 급부의 갈등은
누가 꼭 옳고 누가 더 그르다
이분법으로만 결론 지을 수 없다는 사실

그러나 잘못 알려진 진실은
분명히 바로 잡아져야 하고
아무데서나 박수치고 환호하는 오류는 없어야 겠습니다

황 박사님
진실의 전달로서 저희들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나이다

감사합니다^^
꼬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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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빠의 감동적 이야기* 새로운 홈페이지 구축 및 비상대책위원회 구성